선교사 어비슨가는 3대에 걸쳐 한국사랑을 행했다. 세브란스병원 설립자 올리버 어비슨, 파란 눈의 쌀박사 고든 어비슨, 참전용사 부드 어비슨이 그들이다. 고든 어비슨 (Gordon W. Avison·1891-1967)은 광주·전남의 근대사와 뗄 수 없는 인연을 가진 인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상대적으로 어비슨은 많이 알려지지 않았다.

농업 분야여서 그랬을 수 있다. 며칠 전 어비슨에 대한 아카데미를 하면서 불쑥 들었던 생각이다. 진정으로 백성을 위하는게 뭘까? 2010년에 그와 인연을 맺었던 광주YMCA와 광주양림교회가 어비슨 기념관을 세워서 그나마 다행이다. 고든 어비슨 부부의 희생적 발자취를 기려 기념관 1층에는 ‘어비슨기념홀’, 2층에는 ‘어비슨카페’가 있다. 기념홀에는 양림동 문화지도와 어비슨의 행적을 담은 사진 자료들이 있다.

고든 어비슨 (Gordon W. Avison·1891-1967)은 우리나라 근대의학과 의학교육의 기초를 놓은 세브란스병원 설립자 올리버 어비슨(또는 에비슨·O.R.Avison·1860-1956)의 아들이다. 1891년 캐나다 토론토에서 태어났다. 아버지가 미국 북장로교 의료선교사로 파송 받아 고종황제의 어의(御醫)를 지냈고, 한국 근대의료와 의학교육의 기틀을 놓았다. 1919년 3·1운동 이후 일제의 수탈로 피폐해진 한국의 농민과 농촌을 돕기 위해 미국YMCA는 고든 어비슨 등 농업전문 간사 7명을 한국에 파견했다.

인도 선교사의 딸로 간호사 출신인 부인(프란세스)과 두 아이를 데리고 한국에 온 어비슨은 광주YMCA 최영균과 함께 호남 지역을 맡았다. 그의 농촌운동은 광주YMCA와 전남노회 소속 교회들과의 긴밀한 협력 가운데 이뤄졌다. 농업전문가로서 농업활동을 벌이는 한편 야학을 열어 문맹 퇴치에도 힘썼다. 각처에 신용협동조합과 농우회를 결성, 생활개선과 문화보급에도 나섰다.

안식년을 맞아 고향 미국에 머물렀던 어비슨은 통조림 기술을 배워 돌아왔다. 한국에 와서 통조림 제조 장비를 만들고, 농산물을 장기 저장할 수 있도록 도왔다. 특히 그는 캔 제품 개발로 어린이 사망률을 낮추고 축구, 유도, 권투 등 다양한 사회체육 활동을 통해 청소년들의 체력증진에 이바지하며 다양한 사회공헌 활동을 펼쳤다. 그가 얼마나 한국을 사랑했는지 알 수가 있는 대목이다. 또 그의 부인은 영·유아 사망을 줄이고자 필요한 단백질을 공급하기 위해 콩우유를 보급하는데 앞장섰다고 한다. 당시 부족한 영양공급의 일환이었다.

어비슨 선교사는 이곳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며 ‘3가지 사랑’을 행하였다. 하느님 사랑, 땅 사랑, 이웃사랑 등이 그것이다. 1939년 일제의 탄압이 극에 달하던 시기, 어비슨 선교사 가족 일행은 강제 출국을 당하게 되었다. 고든 어비슨의 외아들 부드 어비슨은 한국인 2세와 결혼한 후 보병으로 한국전에 참여했고, 그 부인도 전쟁 중 초창기 한국군 간호부대 고문으로 간호 인력을 양성하고 굶어 죽어가는 전쟁고아들과 갈 곳 없는 피난민들을 위해 봉사했다. 고든 어비슨의 막내딸 진 어비슨이 어린 시절 썼던 일기가 그의 언니에 의해 발견 되어 세상에 알려졌다.

“가난한 시설에 있는 사람들에게 나는 무엇을 줄 수 있을까? 내가 목자라면 어린 양을 가져왔을 텐데 내가 똑똑한 사람이라면 내 역할을 했을 텐데 언젠가는 어려운 그들에게 무엇을 줄 수 있을까? 사랑이 담긴 나의 마음을 줄 거야”

어비슨 선교사의 막내딸 제니 어비슨(Jeanne Avison)이 7살 때인 1933년 크리스마스에 쓴 일기라고 고든 월버포스 어비슨 부부의 삶을 소개한 작은 홍보책자는 카페 내에 비치돼 있다. YMCA 농촌 사업이 현저한 성공을 거둔 곳은 광주를 필두로 서울과 함흥 세 곳뿐이었다. 당시 광주는 다른 지방에 비해 농촌사업이 괄목할만한 성장을 보였다. 광주의 성과는 농업전문가 고든 어비슨의 노력 때문이었다. 농업활동이 왕성하지 않다는 이유로 당시 파란 눈의 쌀 박사 고든 어비슨을 간과하기 쉽다. 우리는 농촌사업을 진작시켰던 고든 어비슨을 기억해야 하는 이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