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아름다운 땅에서 일어난 가장 비극적인 일, 제주 4·3항쟁의 70주년을 기념하며 한국작가회의 소속 90명의 시인들이 시 모음집 ‘검은 돌 숨비소리’를 펴내 눈길을 끈다.

‘검은 돌 숨비소리’에는 4·3의 고통스런 역사와 4·3정신 등을 소재로 한 시 90편이 담겨 있다. 제주 지역은 물론 전국 각지 작가들의 신작시를 1편씩 모았다. 원로 신경림, 정희성, 이시영 시인부터 안현미, 장이지, 박소란 등 젊은 시인에 이르기까지 총 90명의 시인이 참여했다.

무엇보다도 광주·전남지역의 많은 시인들이 4·3 항쟁 70주년 시선집에 시를 실었다.

한국작가회의 광주지회장인 박관서 시인, ‘5월 시 동인’의 나종영 시인을 비롯해 담양 출신의 고재종 시인, 해남 출신의 김경윤 시인, 영광 출신의 박남준 시인 등이 참여해 시집에 힘을 보탰다.

역사적 분기점에서 늘 목소리를 냈던 시인들은 5·18 정신과 제주 4·3의 정신이 지역을 떠나 어떻게 연대하고 국가적 폭력에 저항하는가에 대해 보여주고 있다.

박남준 시인은 ‘잔인한 비문’이라는 시를 통해 4·3 희생자들의 무덤에 세워진 백비(희생자의 이름을 알 수 없어 새운 무병비)를 보여준다. ‘지독하고 잔인했던 학살의 흔적과 그것을 기억하려는 자들의 노력이 오늘의 평화를 만들었다’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

김경윤 시인은 보도연맹 사건으로 희생된 ‘갈매기섬’ 사람들의 목소리를 시에 담음으로써 집단학살의 또 다른 현장을 통해 제주 4·3과 연대하고 있다. 김경윤 시인의 전라도 사투리는 시집 속의 제주 사투리들과 어울려 분단된 한국사회 곳곳에서 일어난 학살 사건이 단순히 일부 지역에 국한된 것이 아님을 생생한 목소리로 담아내고 있다.

시 모음집 발간에 앞장 선 한국작가회의 제주지회장인 이종형 시인은 “잊지 않는다는 것, 기억한다는 것만이 4·3의 전부가 아닐 것이다. 4·3의 역사가 우리에게 요구하는 것, 그 성찰의 시간이 바로 지금”이라며 “4·3 영령들을 위무하고 진혼의 술잔을 따라 올리는 마음으로 방방곡곡의 시편을 모았다. 제주 4·3 70주기를 맞는 이 봄날 붉은 꽃을 따라간 푸른 잎들도 돌아와 아문 상처 위로, 새살이 돋아야 할 때”라고 발간 취지를 밝혔다.

제주에서 나고 자라 활동하고 있는 강덕환 시인은 “4·3항쟁 70주년은 곧 기억 투쟁이며 제주도민 뿐 아니라 한국사회가 분단을 거부하고 통일을 갈망했던 한민족의 염원을 담고 있는 행사가 될 것”라고 전했다.

/정겨울 기자 jwinter@kj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