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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태석 박사의 뮤지엄 읽기] (4) 박물관에서 봐야 할 것
“박물관, 눈으로 봐야 비로소 보이는 낯섦과 설렘”

2018. 03.07. 18:19:09

국립현대미술관을 찾아 전시 작품을 관람하는 학생들.

새해가 시작돼도 1월과 2월은 늘 뒤숭숭하다는 생각이다. 설이 지나고 들떠있던 마음이 진정된 후 맞게 되는 3월에야 비로소 한해가 시작되는 느낌이다. 만물이 약동하고 학교도 새 학년이 시작되는 이때에 박물관·미술관(이하 박물관)도 생기를 찾게 된다.

윤태석 한국박물관협회 기획연구실장 문화학 박사
학교의 학사(學事)가 어느 정도 정돈되는 4월부터 박물관은 학생들을 첫손님으로 해 분주해 진다. 박물관을 찾는 단체 관람객의 유형은 몇 가지로 정리해 볼 수 있다.

주로, 학생 관람객들은 자유학기제 수업이나 창의적 체험활동, 소풍이나 수학여행 등으로 박물관을 찾고 있으며, 주말이나 방학에는 사교육에 맡겨진 아이들이 과제를 위해 교사와 함께 찾는 경우도 적지 않다.

학기말 수능시험이 끝나면 오갈 데 없는 수험생들로 박물관은 인산인해를 이루기도 한다. 일반인들의 경우는 내외국인 단체관광객이 주류를 이루지만, 늦가을 추수를 끝낸 농촌어르신들의 방문은 또 다른 모습으로 연출되곤 한다.

사무실이 국립중앙박물관에 있는 필자는 종종 이들의 표정을 관찰할 때가 있다.

학생들은 학교를 벗어났다는 설렘도 잠시, ‘왜 내가 여기에 왔지?’를 묻기라도 하듯 들뜬 표정은 사라지고 무거운 인상을 짓고 있는 경우도 있다. 숙제를 목적으로 온 아이들은 진열장의 유리를 책받침 삼아 전시물 앞에 누군가에 의해 쓰인 글씨를 베끼느라고 꼬막손에 쥔 연필들만 분주할 때도 많다.

삼성미술관 리움 전경.
농한기를 맞아 관광차 들린 노인들의 표정은 박물관에서 벗어나야만 비로소 밝아짐을 볼 때도 왕왕 있다. 한마디로, 이들에게 박물관은 어렵고 재미없다는 얘기다.

몇 년 전 국제적으로 명성이 높은 외국 오케스트라단의 클래식음악회에 참석했던 일이 생각난다. 제법 수준 높은 공연이었음에도 객석에는 고등학생으로 보이는 아이들이 많았다. 그런데 최소의 격식을 갖춰야 할 클래식연주회에 상당수의 아이들이 반바지에 슬리퍼차림이었다. 여름방학의 끝자락, 더위가 채 가시지 않은 날씨임을 감안하더라도 참으로 민망한 모습이 아닐 수 없었다. 더 놀라운 것은 음악회가 시작됐는데도 앞 의자 사이에 양 발을 올린 채 귀에 이어폰까지 꽂고 연주와는 무관한 리듬에 고개를 까닥이고 있었다는 것이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외국인 관객도 적지 않았던 이 공연에 참석한 학생들의 목적은 공연 한 편씩을 보고 관람권을 제출하는 방학숙제에 있었고, 따라서 이들에게 최소한의 예의와 교양 따위를 기대하기에는 무리가 있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박물관을 비롯한 문화경험은 이들에게 어떤 목적을 지니는 것일까, 또 이들은 왜 박물관을 어렵고 재미없게 느낄까를 생각해보게 됐다.

필자가 생각하는 결론부터 말하자면 관람객 자신이 중심이 되지 못하는 태도에서 비롯되는 문제라고 생각한다.

숙제나 성적 따위를 목적으로 하는 박물관 관람은 오히려 박물관을 제대로 볼 수 없게 한다. 따라서 문화적 경험은 그 자체가 목적이 돼야 하며, 그래야만 관람객 자신의 관점과 생각이 중심이 되는 문화경험이 가능해진다.

건국대박물관 전경.
아이러니하게도 박물관은 낯설음을 보기 위해서 찾는다는 게 필자의 생각이다. 그리고 박물관은 익숙했던 것도 전문적인 박물관의 문법을 통해 낯설게 보이게 마련이다.

낯선 곳에 가면 무엇을 보게 될까? 예컨대 여행을 가면 음식이 맞지 않아 금세 고생하는 사람이 있다. 이들은 매 끼니때마다 김치며 된장찌개를 떠올리게 된다. 또 잠자리가 불편할 때면, 곧 자기 집 아랫목이 그립게 된다. 그래서 여행을 가는 것이다. 김치와 된장찌개 또 아랫목은 다름 아닌 자기 자신이다. 평소 때는 소중하게 생각지 못했던 사소한 것들이 낯선 곳에서는 매우 절실해지고 그것들이 인식의 중심에 놓이게 되는데, 그것이 바로 본연의 자신임을 느끼게 된다. 이처럼 낯섦은 자기 자신을 발견하게 하는 중요한 매개가 되며, 멀리 떠나지 않더라도 우리 자신을 발견할 수 있는 곳 중의 하나가 박물관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박물관에서 만나게 되는 낯섦의 대상은 어떤 것이 있을까? 먼저 보통의 박물관에 놓일 수 있는 전시품의 자격을 우리 법에서는 역사·고고·인류·민속·예술·동물·식물·광물·과학·기술·산업 등에 관한 인간과 환경의 유형적·무형적 증거물로서 학문적·예술적 가치가 있는 자료이어야 한다고 명시한다.

박물관의 ‘박’(博·넓을 박)이 의미하는 것처럼 모든 것을 포함한다. 이를 보다 구체적으로 언급해보면 박물관의 설립목적 달성과 자료의 수집·관리·보존·전시, 이에 관한 교육 및 전문적이며 학술적인 조사와 연구 등 박물관에서 할 수 있는 제반 업무를 수행하기 위해 보존 또는 활용이 가능한 증거물이어야 한다.

온양민속박물관 전시실.
또한 무형적 증거물의 경우에는 부호·문자·음성·음향·영상 등으로 표현된 자료나 정보가 이에 해당한다.

이런 박물관 자료에는 국보나 보물 등 지정문화재도 적지 않다. 먼저 보물은 목조건축·석조건축·전적(典籍)·서적·고문서·회화·조각·공예품·고고(考古)자료·무구(武具) 등 유형(有形)문화재 중에서 역사적·학술적·예술적·기술적 가치가 큰 것을 문화재청에서 운영하는 문화재위원회의 심의를 거쳐 정부가 지정한다.

또한 국보는 보물로 지정될 가치가 있는 것 중에 제작연대가 오래되고 시대를 대표하거나, 유례가 드물고 우수하며 특이하거나, 역사적 인물과 관련이 있는 것을 보물지정 절차에 준해 정부가 지정한다. 국가가 지정할 만큼은 아니어도 보존할 가치가 분명한 것은 시, 도 지정 유형문화재로 지정해 보호받게 된다.

일반인들이 많이 찾게 되는 국립중앙박물관이나 산하 13개 국립박물관(1개 전시관 포함), 국립민속박물관, 삼성미술관 리움과 같은 곳에는 상당수의 전시품이 이 정도의 수준이기 때문에 우리들에게 낯섦을 더욱 강하게 선사한다.

한편, 무형의 것도 박물관 자료가 될 수 있는데 이것들은 여러 세대에 걸쳐 전승돼 온 무형의 문화적 유산 중에서 전통적인 공연·예술. 공예, 미술 등에 관한 전통기술, 한의약, 농경·어로 등에 관한 전통지식, 구전 전통 및 표현, 의식주 등 전통적 생활관습, 민간신앙 등 사회적 의식(儀式), 전통적 놀이·축제 및 기예·무예 등이 이에 속한다.

이러한 전시품의 자격과 형태는 누구에게도 어렵기는 마찬가지다. 그러나 박물관을 낯설게 하는 근본적인 이유는 다름 아닌 전시물을 보는 시각이 타자(他者)에 있기 때문이다. 전시품을 전문적으로 연구해 규정한 전문가, 과제를 내준 교사, 전시품을 설명해 놓은 패널과 같은 안내판, 이를 설명해주는 학예사(Curator)나 해설사(Docent) 등은 내 관점과 시각을 가리는 매개로 작용한다.

박물관에서 어떤 것을 볼 것인지에 대해 영화 ‘블랙 스완’(Black Swan)은 좋은 참고가 될듯하다.

도스토옙스키의 소설 ‘분신’에 매혹돼 영화화된 대런 애로노프스키(Darren Aronofsky)의 이 작품은 자기 분신에게 인생을 다 빼앗긴 한 인물을 소재로 하고 있다. 발레 ‘백조의 호수’의 백조 여왕으로 새 프리마돈나가 된 주인공은 자신의 단점인 흑조 연기가 잘 되지 않아서 힘들어한다. 마침내 공연을 앞두고 가중된 중압감과 강박은 환각으로까지 이어져 큰 고통을 준다. 결국 환영(幻影)이 교차되는 혼돈의 상황에서도 종국에는 자기 자신을 찾게 되는 주인공들의 마지막 대사는 “완벽함을 느꼈어요. 나는 완벽했어요”다. 우리가 박물관에서 찾아야하는 단서를 제공해주는 듯 해 새롭다.

우리는 언제부턴가 아무리 하찮은 행위와 경험에서도 기필코 답을 찾으려고 하는 태도가 생겼다. 그러나 유물과 작품 감상은 정서적 감흥과 설렘만 있으면 족하다는 게 필자의 생각이다. 굳이 분석적이거나 비평적인 태도를 가질 필요도 없다. 설렘과 감흥은 타자가 주는 것이 아니라 보는 이의 오감이 열려야만 봄볕처럼 찾아드는 즐거움이기 때문이다.

박물관에서는 낯설음을 긍정으로 받아들이고 타자가 아닌 자신의 오감으로 다가가 자아를 보려고 하면 족하며 그 다음의 것은 그때에 비로소 보이게 된다. 앞으로 박물관을 찾는 많은 이의 표정이 한결 밝아졌으면 하는 바람을 가져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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