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사회학자 오그번(W.F. Ogburn)은 현대인들이 급속히 발전하는 물질문명을 따라가지 못하는 현상을 문화지체(文化遲滯, cultural lag)라고 불렀다. 그런데 아내가 자주 나에게 “뚬벙하다”고 말하는 것을 보면, 나도 ‘문화지체’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는 것을 자백하지 않을 수 없다.

초등학교 3학년 여름방학 때, 광주에 사는 누나 집에 놀러가는 친구를 따라 또 다른 친구 한 명과 함께 난생 처음으로 광주에 갔다. 우리는 함평 학교역(鶴橋驛)에서 기차를 타고 광주역에 도착한 후, 다시 택시를 타고 계림극장 앞에서 내려, 그 곳에서 기다리는 그 친구의 누나와 만나도록 되어 있었다.

우리 세 사람은 광주역에서 택시를 타고, 각자의 손에 택시 기본요금을 들고 뒷좌석에 나란히 앉았다. 그리고 택시 미터기를 주시(注視)하고 있다가 택시 요금이 100원씩 올라갈 때마다 주머니에서 100원 짜리 동전 하나씩을 꺼내 들었다. 그러다가 택시 요금이 1,000원이 되면 일제히 손에 쥐고 있던 동전 아홉 개를 모두 주머니에 넣고 1,000원짜리 지폐 한 장씩을 꺼내 들고 있다가 또 요금이 100원씩 올라갈 때마다 100원 짜리 동전 하나씩을 다시 꺼내 들었다. 그리고 택시가 목적지에 도착했을 때 우리는 기사님께 각자가 가지고 있는 택시 요금을 주고 내렸다.

우리가 택시에서 내렸을 때 뒤늦게 달려온 그 누나가 우리에게 “바보들”이라며 엄청난 비난을 쏟아 부었다. 그러나 나는 그 때 그 누나의 질책을 전혀 이해할 수 없었다. ‘기차를 타든, 버스를 타든, 차비는 언제나 각자가 내는데, 우리가 뭘 잘못했지?’

우리는 도로에서 ‘복덕방’이라는 간판을 보고, 친구 누나에게 그 뜻을 묻고 설명을 들었지만 끝내 이해할 수 없었다. 지금의 공인중개사 사무소를 그때는 복덕방이라고 했는데, 초등학교 입학 전에 천자문(千字文)을 마친 나로서는 복덕방(福+德+房?)의 의미를 끝내 이해할 수 없었던 것이다.

내가 초등학교 때 이해하지 못했던 단어는 그 외에도 ‘사랑방(love room?)’, ‘구멍가게’, ‘여우(fox?) 주연상’ 등 몇 개 더 있었다. 또 “옛날에 금잔디 동산에 메기와 같이 앉아서 놀던 곳…”이라는 노래도 참 이상했었다. 그 때 우리 동네 앞 개천에는 메기가 많이 살고 있어서 메기탕을 많이 끓여 먹었는데, 메기와 함께 산(山)에서 놀다니….

1974년, 나는 처음으로 광주에서 김포행 비행기를 탔다. 탑승할 때 창(窓)가 좌석에 앉으면 좋겠다는 나의 소망이 이루어졌는데, 김포에 도착하여 문제가 발생했다. 아무리 노력해도 안전벨트가 풀리지 않는 것이었다. 승객들 대부분이 내려버려, 내 주위에는 아무도 없는데…. 광주에 고속버스가 다니기 시작한 것이 1973년 11월이었으므로, 안전벨트 착용은 그때가 처음이었다. 나는 결국 스튜어디스의 도움으로 구출되었는데, 지금도 고속버스나 비행기를 탈 때면 그때가 생각나서 얼굴이 화끈거린다.

1977년 내가 처음으로 외국(동남아) 여행을 할 때였다. 당시는 해외여행이 자율화되기 전이었고, 인천국제공항도 없을 때였다. 김포국제공항에서 일행을 만났는데, 그 중 나이가 지긋하신 할아버지 한 분이 커다란 여행용 가방을 갖고 있었다. 그래서 나는 그 분이 사양을 하는데도, 굳이 그 커다란 가방을 들어 탑승 수속 데스크까지 옮겨 주었다. 거기서 우리는 수화물을 부치기 위해 천천히 줄을 따라 걸어가는데, 그 할아버지는 전혀 힘을 들이지 않고 그 가방을 끌고 가는 것이 아닌가! 아뿔싸, 가방에도 바퀴가 달려 있다니? 나는 그것도 모르고 낑낑거리며 그 무거운 가방을 들고 갔으니…

핸드폰이 나온 후에도 문화지체로 인한 나의 실수는 계속되었다. 한번은 점심 식사를 하고 화장실에 들렀는데, 누가 인사를 했다.

“안녕하세요? 점심 식사는 하셨어요?”

“네. 감사합니다. 점심 식사 하셨습니까?”

그리고 화장실을 둘러보니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그런데도 목소리는 계속되고 있었다. 바로 화장실의 어느 칸에서 누군가가 전화를 하는 목소리였다. 나는 황급히 화장실에서 탈출해야 했다.

작년 가을의 일이었다. 나는 아내와 딸 대은이와 함께 단풍이 불타는 내장산을 찾아 가을을 만끽하고 있었다. 그런데 묘령의 여인이 저만치에서 스마트폰을 들고 계속 나를 촬영하고 있었다. 그때 순간적으로 별별 생각들이 나의 머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나를 찍고 있는 저 여인은 도대체 누구일까? 나를 아는 여인일까? 나는 도저히 기억이 나지 않는데…. 나는 흘깃흘깃 아내의 눈치를 살폈지만, 아내와 대은이는 태연한 표정이었다.

결국 참지 못하고 내가 먼저 입을 열었다.

“저 여자는 왜 계속 나를 찍고 있지?”

“아니, 참, 아빠! 저 아줌마는 지금 셀카를 찍고 있는 거예요.”

“그래? 셀카가 뭔데?” ……

내가 박사학위를 받았던 원광대학교 교정의 커다란 바위에 새겨진 설립자 박중빈 선생의 말씀을 나는 항상 되새기고 있다.

“물질이 개벽하니 정신을 개벽하자.” 끝.


<약력> 조선대 법학과·대학원 법학과 졸, 원광대 박사과정 수료 (법학박사), 송원대 부동산학과 및 행정학과 교수 역임, 문학춘추 수필 등단, 현재 송원대 명예교수, 문학춘추작가회 이사, 광주문협·전남문협 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