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마을에 오빠와 여동생이 살았어요. 둘은 비슷한 데가 하나도 없었어요. 모든 게 딴판이었죠. 동생은 자기 방에 틀어박혀 책을 읽거나 공상을 했어요. 오빠는 밖에 나가서 친구들과 웃고 떠들고 공놀이를 하고, 뒹굴며 뛰어놀았고요. 밤이면 오빠는 곤히 잠들었지만, 동생은 말똥말똥 깨어 있었죠. 밤에 들려오는 모든 소리에 귀를 기울이면서. 이따금 오빠가 살금살금 다가와 동생을 깜짝 놀라게 하기도 했어요. 동생은 깜깜한 밤을 너무너무 무서워했거든요.” 앤서니 브라운의 그림책, ‘터널’에 등장하는 남매는 닮은 게 하나도 없다. 얼굴만 마주쳐도 으르릉, 다투기 일쑤다. 어느 날 화가 난 엄마는 “너희 둘 나가서 사이좋게 놀다 와! 점심 때 까지 들어오지 마” 남매를 밖으로 내보내고, 남매는 우연히 터널을 발견하게 된다. 오빠는 곧바로 허리를 굽혀 터널 안으로 들어가고, 동생은 터널 밖에서 오빠가 나오기만을 기다린다. 하지만 오빠는 나오지 않고, 깜깜한 밤을 너무너무 무서워하는 동생은 오빠를 찾아 컴컴하고, 축축하고, 미끈거리고, 으스스한 터널 안으로 들어간다. 돌처럼 굳어버린 오빠를 찾게 된 동생, 동생이 오빠를 꼭 껴안자 오빠의 몸에 온기가 돌아온다. 비슷한 구석이 하나 없는 남매, 매일매일 다투기만 했던 오빠와 동생이지만 터널 속 위기를 통해 서로의 마음을 나누게 된다. 평소에 느끼고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강한 끈으로 서로가 연결되어 있음을 알게 된다. 서로가 서로에게 위안이 되고 힘이 되는 존재임을 깨닫게 된다.

“오빠! 오빠!”

어린 시절, 오빠와 함께 길을 걷다 만났던 터널 또한 두려움이었다.

잠시 잠깐 한눈 판 사이에 터널 안으로 들어가 버린 오빠를 기다리다 지쳐, 오빠를 부르며 찾아 들어 간 터널은 컴컴한 어둠이었다. 몇 발작 걷다 그대로 멈춰, 앞으로 나아가지도 못하고, 뒤로 물러설 수도 없어 온 몸이 울음으로 차오르던 순간, 어디 선가 불쑥 나타난 오빠가 얼마나 반가웠던지. 오빠와 함께 나란히 터널을 나서는데 어깨가 으쓱, 힘이 났다. 오빠가 걱정되는 마음에, 무섭고 두려운 마음을 억누르며 오빠를 찾아 나섰던 만큼이나 내 키가 쑥, 자란 느낌이었다. 나 또한 오빠에게 든든한 동생이 된 것 같았다.

가족, 내 안의 나, 직장, 친구….

살아오는 내내 만났던 여러 빛깔 터널 또한 두려움이었다. 가족이면서 가족 같은 느낌이 없어질 때, 내 안의 내가 낯설어 질 때, 직장에서의 시간이 무료해 질 때, 친구와 나누는 대화가 자꾸만 겉돌게 될 때…. 나는 어느 새 어두컴컴한 터널에 서 있는 느낌이다. 분명, 저 만큼, 그 어디엔가, 끝이 있음을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몸도 마음도 그대로 놔 버리고 싶을 때가 있다. 이 터널을 통과해봤자, 더 크고 더 컴컴한 터널이 기다리고 있을 것 같아 맥이 풀린다. 하지만, 이 모든 것들은 나에게서 비롯된 시작이며 끝이다. 터널에 갇히는 것도 터널을 통과해 나오는 것도 내 몫이라는 생각이다.

지난 한 달이 그랬다.

약간의 몸살기로 시작된 감기는 약을 먹고 주사를 맞으며 열심히 치료해도 좋아지지 않았다. 시간이 지날수록 몸의 통증이 가슴으로 스며들어와 내 삶을 온통 야금야금 갈아먹는 느낌이었다. 이 밤이 지나고 새 아침이 되면, 조금은 좋아지겠지. 밤마다 품었던 희망이 서서히 퇴색되어 갈 때마다 가슴 가득 어둠이 내려앉는 것 같았다. 해야 할 일도 많고, 해야 될 일도 많은 만큼이나, 모든 걸 그대로 놓아버리고 싶었다. 아무도 없는 길고도 어두컴컴한 터널에 주저앉아 소리 내어 꺽꺽, 울어버리고도 싶었다.

하지만, 어느 새 어둠이 가고 햇살이 찾아왔다.

지극히 평범한 일상이 참으로 감사하게 느껴지는 또 다른 하루가 시작되었다. 저기 저만큼, 또 다른 터널들이 나를 기다리고 있겠지만 이제는 시작이다. 터널의 끝은 반드시 존재하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