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극단 ‘산’이 창작한 연극 ‘소’를 관람했다. 연극 ‘소’는 1996년 대홍수로 북한에서 소 한 마리가 한강 하류로 떠내려 온 실제 사건을 코믹하게 풀어낸 공연이다. 오랫동안 분단국가로 살면서 ‘우리의 소원은 통일’인데, 어떻게 해야 평화를 유지하면서 분단을 극복할 수 있을 것인가하는 시대정신을 잔잔하게 이야기하고 있다. 특히 남북 관계를 풍자와 해학으로 다루고 있어 보는 즐거움을 더한다.

민통선내의 마을 ‘우도리’는 소가 많은 마을이다. 5년전 우연히 들어온 ‘왕소’를 키우게 되며 집집마다 소 한마리씩 갖게 되는 전설을 이루려는 마을이다. 홍수로 떠내려 온 ‘소’는 오래 전 독립군이 해방 후에 집집마다 소 한 마리씩을 갖게 하려고 비밀리에 기른 ‘소’였다는 사실이 남북 고위급 회담, 군사작전, 국제 사법 재판 등을 거쳐 흥미진진하게 드러난다. 농가의 소 한마리가 한반도의 정치, 군사, 외교 상황에 의도치 않은 국면을 코믹하게 만들어 내면서, 우리 시대의 분단 문제와 평화의 문제를 재치 있게 풀어낸다.

다른 곳도 아닌 광주에서 분단과 통일의 문제, 평화의 문제를 다룬 코믹 우화극 ‘소’가 공연된 것은 의미가 있다. 연극 ‘소’는 ‘광주의 정신’과도 연결되기 때문이다. 실제 공연에서 지칭되는 장소는 민통선마을이지만 통일을 간절히 염원하는 대한민국 광주다. “광주가 북한을 여는 열쇠”라고 말한 오대원 목사님을 비롯해 통일과 과년해 많은 사람들이 광주를 주목하고 있다는 사실과 맥락을 같이 한다. 국립아시아문화전당 (ACC)에서 우리 시대, 통일의 문제를 정면으로 다룬 연극을 채택했다는 것은 참으로 반가운 일이다.

희곡을 쓴 윤정환은 ‘짬뽕’이란 작품을 14년이 넘게 해오며 소시민들의 꿈과 희망을 이야기하고 있다. 당시 금기시하던 광주민주화운동을 연극에 녹여낸 연출자이기도 하다. 현대사의 어두운 면을 그려나가면서 현실에 대해 코믹하게 꾸몄다. 연극 ‘짬뽕’은 2004년 초연됐다. 5.18이 짬뽕 한 그릇 때문에 벌어졌다는 기발한 상상력으로 무겁고 진중하게만 다뤄졌던 역사의 아픔을 소시민들의 이야기로 따뜻하게 다루며 웃음과 함께 많은 시사점을 남겼다. 중국집 ‘춘래원’ 식구들이 소박한 꿈을 지키기 위해 벌이는 좌충우돌 해프닝을 그린 블랙코미디 연극이다. 5.18을 소재로 한 연극으로선 아마 처음이 아니었나 싶다. 1980년대 광주를 때론 유쾌하게 때론 의미심장하게 보여 주고 있다.

야심찬 생각을 해본다. 기상천외한 상상력을 동원해 대중들로 하여금 조금 더 가깝게 친근하게 광주를 느끼게 하고 그 가운데 시대정신이 번득이는 공연물들이 많이 나와 사람들의 심금을 울린다면 좋겠다는 희망을 품어본다. 공연 무대가 역사적 사건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하게 하는 계기점이 된다는 걸 확인하면서 연극 ‘소’가 장기공연이 되어 역사적 사실을 좀 더 많은 사람들이 공유하고 그에 대해 사색해보는 기회를 갖게 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런 과정이 반복되면 역사는 좀 더 발전하지 않을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