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사독재의 망령이 한국사회를 배회하고 있다. 살인마 전두환은 5·18에 책임이 없다 하고, 그 부인인 이순자는 자신들도 피해자라고 한다. 청산해야 할 세력을 남겨 두니 모욕이 되어 우리의 일상을 강타한다. 누가 대통령이 되건 꼭 해야 할 차기 정부의 일이 ‘적폐청산’이라는 확신만 거듭 든다.

그 적폐 중 하나가 보안관찰법이다. 이 법은 국가보안법이나 내란음모 등의 혐의로 3년 이상의 형을 받은 사람을 ‘보안관찰처분 대상자’로 규정한다. 2천300명 정도가 ‘대상자’인데 그 안에는 내란죄로 사형을 선고 받은 전두환도 포함되어 있다.

대상자 중 재범 위험이 높다고 판단되는 사람에게 3개월마다 활동내역·여행지·만나는 사람 등을 의무적으로 신고토록 하고 있다. 이들을 ‘피처분자’라고 분류한다. 대략 43-45명 정도가 피처분자인데 최연소 장기수로 14년 복역을 한 강용주가 포함되어 있다.

강용주는 “보안관찰법이 개인의 기본권을 심각하게 제약한다”며 신고의무를 이행하지 않고 있다. 그 결과 2002년과 2010년 보안관찰법 위반으로 각각 벌금 50만원과 150만원을 선고 받았다. 오는 4월28일 강용주는 신고의무 불이행으로 다시 법정에 선다.

광주시민을 조준사격하고 수많은 민주 인사들을 고문한 전두환은 피처분자가 아니어서 신고의무가 없다. 군사독재 고문 피해자, 형제복지원 등 불법 시설에 억류당해 고통 받았던 이들을 치료하고 있는 강용주는 자신의 일거수일투족을 법무부 말단 직원에게 신고해야 한다. 참으로 어처구니없는 법률이고, 처분이다.

보안관찰법은 유신시대 사회안전법(1975년 제정)의 후신으로 1989년 6월부터 시행되었다. 보안관찰대상자는 법에 따라 자동적으로 분류된다. 그런데 신고의무를 부여하는 피처분자 규정은 법무부 장관 산하에 있는 보안관찰심의위원회에서 내린다. 한 사람의 기본권을 철저히 짓밟는 결정이 법률도 아닌 행정명령 수준에서 이뤄지는 것이다. 야만도 이런 야만이 없다.

강용주는 전남대 의대 재학 중이던 1985년 9월, 이른바 ‘구미유학생간첩단’에 연루됐다는 안기부(현 국정원)의 발표에 따라 감옥에 갔다. 고문과 조작으로 국가보안법을 위반한 ‘범죄자’가 된 인물이다. 23살에 들어가 37살에 나온 강용주는 김대중 정부 출범과 함께 사면복권을 받았다. 당초에도 죄가 없었지만, 사면복권으로 인해 형식상으로나마 ‘죄’가 지워진 것이다. 그런데도 법무부는 강용주를 붙들고 있다. 자신들의 심기를 건드린 ‘괘씸죄’를 적용한 것 외에 달리 이해되지 않는다.

그저 한탄하고만 있을 수 없어서 나는 강용주와 함께 싸우자고 지역사회에 제안했다. 그 첫 작업으로 ‘42년 적폐, 보안관찰 폐지, 18년 불복종, 강용주 지지’ 문구를 들고 사진을 찍은 다음 페이스북에 올렸다. 이렇게 시작한 보안관찰법 폐지 SNS 캠페인이 넓게 퍼져 나가고 있다.

형제복지원 피해생존자인 한종선씨, 광주트라우마센터, 시민플랫폼 나들, 전남대 의대생들, 강용주에게 치료를 받았던 고문피해자, 여행사 사장, 교사, 주부 등 일반 시민들도 법원에 탄원서를 보내는 등의 방식으로 ‘강용주 사건’에 대응하고 있다. 촛불이 대통령을 파면시키고 국정농단 세력을 유치장에 보냈던 것처럼 보안관찰법 또한 우리의 힘으로 몰아낼 수 있다고 믿는다.

반응이 없는 곳은 정치권이다. 어느 대선 후보도, 어느 국회의원도 강용주를 이야기하지 않고 있다. 법을 만들고, 법 집행 권한을 가진 이들의 비겁함을 다시금 확인한다. 그들은 스스로 움직이지 않을 것이다. 우리가 몰아 부치는 수밖에 다른 도리가 없다. 캠페인은 중단 없이 계속되어야 한다.

자신의 안녕만을 생각했다면 강용주는 얼마든지 타협해 신고의무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하지만 그렇게 하지 않았다. 그는, 한국사회를 여전히 배회하고 있는 군사독재의 망령을 뿌리 채 뽑아 모두가 자유로운 세상을 희망하고 있다. 전두환 같은 이들이 결코 당당할 수 없는 그런 세상을 바라고 있다. 그 희망과 바람을 현실로 만들기 위해 싸우고 있는 강용주를 지지하고 존경한다. 함께할 것이다. ‘강용주’를 자유롭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