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문별 소모임, 사안에 따른 토론이 활발하다. 그동안 단 한 차례도 없었던 당원학교를 열고 공부한다. 오프라인에서, 혹은 단톡방과 같은 온라인에서 당원들끼리 정보를 교류한다. 조직의 실질적 의사결정기구인 상무위원회 회의 또한 자유롭고 활기차다. 최근 보이고 있는 더불어민주당 광주시당의 모습이다. 민주당 소속 현역 국회의원이 한 명도 없고 나서야 생겨난 변화이다. 민주당이 ‘2등’으로 추락하자 나타난 성찰의 풍경이다.

정당은 동일한 정치적 의견을 가진 시민집단이다. 이 정치적 의견을 국민, 혹은 시민의 공익과 접목시키는 것이 정당의 존재이유이다. 그동안 민주당 광주시당은 철저히 중앙당에 종속되어 있었다. 중앙당은 시당의 자원을 ‘동원물량’ 정도로 취급했다. 이런 상황에서 당원들의 공부·교류·토론은 활발할 수 없었다. 결정은 ‘보스’ 혹은 ‘중앙당’이 하니까. 시민의 공익에 접근하는 활동도 부족했다.

지난해 총선에서 광주시민은 이러한 민주당에 강력한 ‘충격’을 가했다. 중앙당의 전략에 따라 10년 가까이 ‘정권교체’만을 외쳐 왔고 광주시당은 그 전략에 복무했다. 시민의 공익을 사실상 다루지 않았으니, 정권교체의 대의를 인정하더라도 좋게만 볼 수는 없었을 것이다. 최근 민주당 광주시당이 보여주고 있는 변화와 성찰의 모습은 시민의 문제제기에 화답한 것이라고 본다.

지역 정치인들의 됨됨이가 부족해 시민의 공익에 소홀했던 것만은 아니다. 여러 이유가 있지만 가장 크게는 정당법이 문제다.

우리나라의 정당법은 수도에 소재하는 중앙당 및 5개 이상의 광역시·도당을 정당설립의 최소요건으로 규정하고 있다. 서울이 아닌 곳에는 중앙당을 둘 수 없고, 지역의 고유한 문제해결을 위한 지역당 설립은 불가능하다. 새로운 세력이 정당정치에 참여하기 위한 진입장벽이 지나치게 높고, 시대의 흐름을 반영하기 어려운 수준으로 경직되어 있는 게 현행 정당법이다.

결과적으로 두 세 개 안팎의 유력 정당이 정치시장을 과점하는 현상이 지속된다. 유력 정당의 구조는 서울의 중앙당이 지역의 시·도당을 ‘거느린’ 형식이다. 이 경우 지역의 필요와 요구는 사소한 것으로 취급받고 중앙당이 추구하는 ‘국가적 기획’만이 의미 있는 것이 된다. 시민은 없고 국민만 있다. 예컨대 어느 정당이고 간에 ‘안보’를 크게 강조하고 있고, 당연히 안보는 중요하다. 하지만 그 강조의 이면에는 국가적 기획을 내세워 지역의 요구를 ‘사소한’ 것으로 깎아 내리려는 중앙정치권의 욕망이 깔려 있다.

국가적 의제와 지역적 의제를 중앙당과 시·도당이 ‘분업에 기초한 협업’ 시스템으로 다뤄야 정상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분권정당’ 구현이 꼭 필요하다. 당원과 지지자들이 ‘가까이에 있는 정당’에 일상적으로 참여하여 지역의 이해, 갈등, 현안을 깊게 토론하고 해결하자는 것이 분권정당의 목적이다. 중앙당이 정권교체를 말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시·도당은 시·도 단위의 과제를 이야기하자는 것이 ‘분권정당론’이다.

예컨대 광주와 전남은 함께 풀어야 할 숙제로 ‘군공항 이전 문제’와 ‘무안공항 활성화’가 있다. 하지만 이 문제는 언제나 광주시, 또는 전남도의 문제에 그쳤다. 광주시당, 전남도당이 이 문제에 깊게 천착한 적은 없다. 최근 쟁점이 되고 있는 무등산 방공포대 이전에 대해서도 시·도당은 ‘정책적 긴장감’이 부족하다. 이런 문제에 시·도당이 깊숙이 관여해야 한다는 것이 분권정당론이다.

지역사회 각 분야(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의 의제에 언제라도 내 놓을 수 있는 당적 기준과 원칙, 가능하면 해결책까지 가지고 있으면 분권정당 체제의 정착이라고 할 수 있다. 분권정당 체제가 정착되면 지금과 같은 정당법 하에서도 ‘국민’과 ‘시민’ 모두에게 유효한 정치행위가 가능하다.

국회의원이 없으니까 활발한 광주시당은 그나마 다행이지만 정상이라고 볼 수는 없다. 국회의원, 시장, 구청장, 시구의원, 당원과 지지자 모두가 있으면서 동시에 활발한 정당이 가장 효과적으로 시민의 공익에 기여할 수 있다. 광주를 포함해 우리나라의 모든 ‘지역’을 더 좋게 하는 정치상상으로 분권정당을 제안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