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 것은 물러가고 있으나 아직 새 것이 태어나지는 않고 있습니다. 헌법재판소가 ‘탄핵’을 확정짓는다 한들 새 것이 태어났다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촛불민심은 대통령 퇴진을 넘어 구체제를 청산하고 새로운 시대를 여는 것까지 요구하고 있습니다. 이 요구에 응답할 수 있고, 옳게 응답해야만 하는 세력은 국회와 정치권입니다.

지난해 연말에 첫 번째 응답이 나왔습니다. 더불어민주당이 2017년 2월 임시국회에서 ▲사회적참사특별법의 패스트 트랙(신속처리안건) 지정 ▲검찰개혁 ▲재벌개혁을 3대 과제로 추진하기로 했습니다. 열렬히 환영합니다. 민주당이 내놓은 ‘3대 과제’는 모두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와 연결되어 있습니다. 유사한 종류의 ‘○○○게이트’를 원천차단하려면 ‘3대 과제’ 실현이 꼭 필요하다고 봅니다. 비슷한 시기에 국민의당도 의총을 열어 ▲최순실 부정재산 몰수 ▲재벌개혁 ▲국정교과서폐기 ▲검찰개혁 ▲교육개혁 등을 우선 처리하기로 결의했습니다.

촛불민심의 열망이 온전히 국회로 전달되는 것 같습니다. 실로 오랜만에 경험하는 민심과 정치권의 동조화 모습입니다. 이대로만 간다면 새 것의 태어남을 기대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우려스러운 일도 없지 않습니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여야 합의로 올해 활동을 개시하는 ‘개헌특위’입니다. 정당마다, 유력 대선주자마다 개헌의 시기와 내용에 관한 주장이 제각각입니다. 개헌은 필요하지만 서두를 일은 아니다는 게 제 생각입니다. 이유는 크게 세가지입니다.

첫째 지금 당장 할 일이 산더미 같은데 개헌이라는 대형 과제를 보태면 우리 사회가 소화할 수 있는 정치적 처리 능력의 과부하를 맞을 수 있습니다. 당장에 ‘여소야대’의 국회에서 개혁입법을 물샐 틈 없이 정비하고 나서 개헌을 추진해도 늦지 않다고 봅니다. 그렇게 하면 개헌의 내용을 좀 더 알차게 다듬을 수 있습니다.

둘째 아직까지 촛불민심은 개헌을 ‘시급하게’ 요구한 적이 없습니다. 다만 필요성에 공감하고 있을 뿐입니다. 무엇을 어떻게 고쳐야 좋을지, 시민적 공감대와 합의의 과정이 꼭 필요합니다. 정치권과 주권자 모두가 시간을 갖고 개헌의 내용을 숙성시켜야 한다고 봅니다. 개헌특위의 활동이 이 정도 선에서 멈췄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셋째 현재의 개헌논의는 대통령과 국회의 권력구조 재편에 머물러 있습니다. 논의의 주도세력이 중앙정치권이어서 생겨난 문제점입니다. 자본권력, 사법권력, 관료권력 등 우리 사회의 모든 권력을 포괄적으로 재편해야 올바른 개헌논의가 이뤄질 수 있습니다.

시기는 분명하지 않지만 어느 때고 간에 개헌논의는 본격화할 것입니다. 이때 우리는 새로운 헌법에 ‘시민적 권리체계’를 분명하게 적어 넣어야 합니다. 대의제 민주주의가 갖고 있는 ‘주권자 배반’의 가능성을 헌법 차원에서 차단하고, 시민의 직접행동을 제도의 힘으로 전환시킬 수 있는 수단을 헌법 차원에서 확보하자는 것입니다.

새 헌법에 별명을 붙일 수 있다면 저는 ‘시민자치공화국 헌법’이 좋다고 생각합니다. 삶터에서 발생한 주권자의 필요와 요구가 곧바로 국가적 과제로 채택되고 실현되는 나라가 시민자치공화국입니다. 시민자치공화국으로 가려면 중앙권력은 더 쪼개져야 하고, 우리 스스로는 ‘국민’이 아닌 ‘시민’으로 거듭나야 합니다. 국가자원 통제 권한을 지금처럼 청와대, 재벌, 관료체제가 몽땅 가지고 있으면, 그리고 우리가 ‘가만히 있으라’는 국가의 명령을 착실하게 듣는 국민에 머무르면, 오늘날과 같은 위기상황은 언제고 간에 닥칠 수 있습니다.

재벌, 관료, 중앙정치권의 이합집산에 불과한 ‘그들만의 공화국’을 해체해야 합니다. 마을, 지역, 일터 등 현장을 중시하는 ‘시민자치공화국’을 세워야 새것, 새 나라가 태어났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시민자치공화국의 탄생을 돕고 시민자치공화국의 운영원리를 염두에 둔 개헌논의가 필요합니다. 이미 우리 광주는 1980년 5월에 시민자치공화국을 경험했습니다. 간절히 열망했으나 이루지 못했던 그때의 꿈을 마침내 실현해 보자는 제안입니다.

옛 것을 철저하게 소멸시키고 새 것의 도래를 가슴 벅차게 맞이하는 2017년 새해를 기대합니다.